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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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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별,
사람들 가슴에는 양심.
한국후견사회복지사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은수입니다.
A welcome greeting
그 가운데 어디쯤
저의 역할이 있으리라 믿고 늘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후견사회복지를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2년 연수 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법관임명이 거부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사회복지인의 도움으로 판사의 길을 걸었던 기억을 합니다. 자연스레 장애인 인권운동에 앞장서게 되었고, 지하철 운동, 장애인스포츠참여 운동, 자원봉사 연대 운동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제가 걸어온 장애인 인권 운동에서 사회복지사들의 헌신이 함께 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법조인과 더불어 사회복지사로 불러 주기를 소망하게 되었고,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랑스러운 복지인의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인생은 역경을 넘어 도전으로 살아 온 삶입니다. 장애의 불편함은 삶의 에너지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숱한 기적의 현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경험은 변호사로 개업했던 시점입니다. 1988년 당시에는 법정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많은 클라이언트들은 장애를 가진 저를 보고 “과연 법정 활동을 제대로 수행할까” 걱정부터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장애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문 산악인을 찾아가 지리산 천황봉을 등정할 수 있게 훈련시켜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대구 앞산에서 시작한 저의 등반훈련은 마침내 팔공산을 거쳐 지리산 천황봉 등정까지 성공하는 기적을 이루었고, 사회적 관심을 한눈에 받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경험은 장애인 스포츠와의 인연입니다. 저는 변호사를 하면서 수입과 능력의 10퍼센트는 사회에 나누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장애인은 성장하는 동안, 스포츠 활동에서 완전 배제당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장애인도 그 특성에 맞는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현실로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1989년 전국 최초의 자원봉사전문기관인 대구볼런티어센터를 만들어 소장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의 스포츠 활동을 위해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모집, 교육, 훈련시키면서 장애인 스포츠 종목을 하나하나 국내에 소개하였습니다. 저 스스로도 휠체어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며, 국제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 대회에서 저는 복식 결승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감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이후 국내 최초 휠체어농구 실업팀 창단, 국제 휠체어 농구 대회 개척으로 성과를 냈고, 대구 최초 장애인종합스포츠센터를 개설, 직접 관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른바 노멀라이제이션의 모범현장을 일구어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저의 많은 시간과 후원금을 투입한 대구볼런티어센터는 이후 사회복지법인 전석복지재단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전석(轉石)은 구른 돌이라는 뜻으로 제가 만든 말입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처음 출발정신으로 영원히 간다는 뜻입니다. 이후에도 2천만원을 기부하여 서울시장애인체육회를 설립하였고, 2015년에는 공적조직인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부회장직(회장은 명예직으로 서울시장)을 맡았고, 2018에는 평창 패럴림픽의 선수촌장(MAYOR OF PARALYMPIC)이 되는 영예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대회에서 처음 금메달을 탄생시켰습니다.

세 번째 경험은 전국의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놈의 엘리베이터!!! 법정에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판사 임명을 거부하던 수준의 대한민국이 전국 모든 전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역사가 만들어집니다. 1991년 처음 대구지하철이 구상될 때부터 저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필생의 작업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지하철이 가장 편리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은 수평 이동이 핵심이므로 엘리베이터와 턱을 없애기만 하면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최고의 교통시설입니다. 자동차는 어쩔 수 없는 단차로 어떻게 무거운 전동휠체어를 싣느냐가 고질적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지하철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판단한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회적 관심 부족으로 서울 지하철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이 한곳도 없는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전세계 지하철 건설사를 공부하며 시민 설득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이 과정에서 재미난 발견은 세계 최초 지하철 건설 현장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들이 우수한 지하철로 만든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대구에서 노장지협 운동(노인도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지하철을 만들자)을 제창하여 당시 대구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대구의 대부분 시민단체와 연대하였습니다. 고장율 거의 제로의 시스템을 구축한 지하철 엘리베이터의 출발에 기여했던 기억은 감동의 순간입니다. 덕분에 저는 대구지하철 개통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네 번째 경험은 성년후견제도의 입법활동입니다. 2008년도 제18대 국회, 민주당 비례대표 2번의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저는 오로지 단임정신으로 장애인인권보장 관련 입법만 마무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 결실 중에 하나가 성년후견제도입니다. 저 역시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장애인복지법상 지체장애인이고, 어찌 보면 저의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쳐 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지체장애인 보다 더 소외된 발달/지적/정신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휠체어가 있다면, 이들에게 휠체어와도 같은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자유 시장경제 속에서 풍요를 누리며,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를 가집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소유권을 보장해 주고 국가와 사회의 간섭이 없는 사적자치(계약자유의 다른 측면)영역을 인정해야 그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나 선천적/후천적 요인으로 사물의 인식,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면 계약자유 원칙이 적용될 수가 없어 그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사회적 고민입니다. 과거 민법에서는 금치산자라는 개념을 통하여 권리를 박탈하였습니다. 인권활동의 역사적 계기는 2006년 UN총회에서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을 통과되면서 입니다. 여기서 발달/지적/정신장애인의 권리에도 주목하게 되었고, 민법 규정의 정비를 요구하게 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나약한 상태에 있는 이들조차도 보편적인 존재로 대우하는 멋진 입법을 해보라는 UN의 명령이 힘이 된 것이죠. 제대로 만들어 현실이 되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복락세계를 지구위에 구현하게 되는 것이지요. 오로지 약육강식의 냉정한 경쟁논리에 속에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은 경쟁력을 잃게 되는 것을 방관해왔는데, 그 약자에게도 단독결정권이 있음을 명심하고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정심으로 흐리지 않고, 그의 온전한 인격권을 존중하라는 성서 수준의 명령인 셈이죠.

저는 지칠 때마다 성경 보듯이 제가 만든 민법 제947조를 읽어 봅니다. 후견인은 후견 받는 이의 재산관리와 신상보호를 할 때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그의 복리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이 경우 후견인은 후견 받는 이의 복리에 반하지 아니하면 후견 받는 이의 의사를 존중하여야 한다. 후견받는 이는 자신의 신상에 관하여 그의 상태가 허락하는 범위에서 단독으로 결정한다. 자랑스러운 입법이지요. 인권 조항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제 이 조문을 살아 있는 현실로 만들어야 할 책임이 우리 사회복지사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를 고령사회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 사회의 주인공이었던 엄청난 능력자들도 치매 등의 원인으로 가장 약자의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현재, 사회의 자산 60퍼센트 이상을 노인분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치매 유병기간이 평균 10년 이상씩 길어지면서 노인들이 소유한 재산들을 그를 위해 활용되지 못하게 된다면, 사회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게 되는 어두운 전망도 생겨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후견제도는 주목을 받게 됩니다. 가급적 빠르게 후견인 선임을 마쳐 공백 없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여생을 아름답게 살아가라는 사회적 요구로 인식해야 합니다. 이제 후견인은 단순한 휴머니티 이상으로 재산관리의 전문성과 재산 활용, 재무, 영업 관리의 능력까지 요구받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초적 복지로서의 공공후견 영역과 전문후견 영역으로 더욱 발전하여 갈 것이 예상됩니다. 선견지명으로 법인후견을 제도화 해두었으므로, 필요에 따라 주식회사와 같은 형태의 후견인 등장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후견협회(소순무 회장)를 창립하여 2018년 세계성년후견대회를 역대 최대의 서울행사로 개최하여, 세계의 후견인들을 놀라게 한 바 있습니다. 저는 평소 법조인은 겸허히 사회복지인의 따뜻함과 겸손을 배우고, 사회복지인은 효율성과 프로패셔널리즘을 배워서 후견의 현장에서 멋진 콤비가 되기를 희망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어디쯤 저의 역할이 있으리라 믿고 늘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에는 별, 사람들 가슴에는 양심.

박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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